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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71회 서울오라토리오 정기연주회 [슈베르트, 샤르팡티에, 비발디 미사곡]
작성자 정세진 (ip:)
  • 작성일 2018-08-06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234
평점 0점

 

 

[영혼을 울리는 음악회 ]

A. Vivaldi [Gloria], F. Schubert [Deutsche Messe] M. A. Charpentier [Te Deum)

 

 

201894()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서울특별시 전문예술단체 서울오라토리오의 제71회 정기연주회 영혼을 울리는 음악회 94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개최된다. 서울오라토리는 그동안 국내와 해외의 수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였던 오라토리움 작품 가운데 가장 감동 있는 악곡들을 선별해 영혼을 울리는 음악회기획

시리즈로 연주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영혼을 울리는 음악회시리즈는 위대한 유산 시리즈와 함께 지난 2011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서울오라토리오의 브랜드 연주회이다.

이번 공연은 비발디[글로리아], 슈베르트[도이치 미사], 샤르팡티에[테 데움]으로 작품 속에 깃든 작곡가들의 혼과 열정, 그리고 신앙과 음악 업적을 겸허한 마음으로 기리고자 준비하였다. 마에스트로 최영철 감독의 지휘로 솔리스트, 합창단, 오케스트라 등 오라토리움 전문예술단체가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은 함께하는 이들의 영혼에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안토니오 비발디(A.Vivaldi, 1678-1741)

안토니오 비발디(A. Vivaldi)는 스카를라티, 코렐리 등과 함께 이태리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다. 베네치아 사람 특유의 붉은 빛이 감도는 금발 때문에 빨강머리 신부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는 가톨릭 사제였다. 23세에 신부가 되었으나, 성직자로서의 생활은 건강상의 이유로 계속할 수 없었다. 결국 성직 수행을 포기하고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라는 이름의 고아원에서 음악교사이자 악장으로 일하는 한편, 이곳에서 그는 많은 작품(종교곡, 기악곡, 오페라 등)을 쓰면서 연주활동을 하였다. 당시 베네치아에서는 버려지는 사생아가 워낙 많아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고아원이 여러 곳에 생겼다. 탁월한 기량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던 비발디 덕분에 이 고아원의 어린이들은 훌륭한 음악교육을 받았고, 베네치아 최고의 연주 수준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제의 직분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비발디는 깊은 신앙심으로 다수의 교회음악을 창작했고, 특히 바이올린을 이용해 아름다운 선율을 그려냈다. 몸은 병약했지만 주로 밝고 유쾌한 음악들을 작곡했다.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왕성한 창작의욕으로 500여 곡의 협주곡과 수십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의 대표적인 교회음악 작품으로는 세 편의 오라토리오, 미사곡, 모테트, 시편에 곡을 붙인 작품 등이 있다. 이중 글로리아는 비발디가 남긴 종교음악 중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이지만, 세상에 알려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프란츠 슈베르트(F.Schubert, 1797~1828)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리히텐탈에서 태어났다. 슈베르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즐겨하던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6살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큰 형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다. 성가대에서 보이 소프라노로 노래하던 어린 슈베르트를 아버지는 당시 빈 궁정악장이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선보였고, 살리에리는 슈베르트의 재능을 인정해 그를 궁정 소년 합창단(빈 소년 합창단) 단원으로 받아들였다. 이 시기부터 교회음악 레퍼토리에 익숙해진 슈베르트는 스스로 작곡을 시작하게 되자 미사 전례음악에 특별한 애정을 기울였다.

 

슈베르트는 짧은 일생동안 998곡을 썼고, 그 중 가곡은 무려 650곡이나 된다. 그러나 그가 가곡의 왕이라 불린 건 단순히 숫자 때문이 아니다. 이전시대에도 시를 가사로 하여 노래로 작곡한 가곡은 존재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종교곡과 오페라가 훨씬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심지어 작곡하기 편하다는 편견 탓에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시가 주는 이미지를 직감적으로 음악으로 옮길 줄 알았다. 가사가 불러일으키는 심상을 그대로 피아노 반주로, 선율로 나타냈다. 시의 감정을 이성의 음악으로 표현해 냈고, 이것이 그를 가곡의 왕이라 불리게 했다.

 

마르크-앙투안 샤르팡티에(M.A.Charpentier 1643~1704)

164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며, 오트콩트로(Haute-Contre:하이테너)였다. 당대에 널리 인정받은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루이 14세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는 궁정의 총애를 받았던 장 밥티스트 륄리의 그늘에 가려져 륄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풀 스케일의 오페라를 작곡하지 못하고 귀족인 마담 기즈의 가족을 위해 소규모의 음악극을 작곡하며 기량을 닦았다. 이런 노력은 륄리의 사후에 작곡한 서정 비극 메데에서 결실을 맺었다. 샤르팡티에는 왕성한 창작열로 12개의 미사곡을 비롯하여 방대한 양의 종교음악과 오페라 등을 작곡하는 한편, 예수회를 위해서도 많은 곡을 작곡했다. 후에는 생트샤펠 성당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어 많은 일들을 하게 된다.

 

1991년에 창단된 서울오라토리오(감독 최영철)는 서울시지정 전문예술단체로서 고귀한 음악문화의 계승과 보급을 위해 학술적인 연구, 연주활동 및 체계적인 교육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서울오라토리오는 음악역사의 맥을 이어온 대규모 오라토리움 걸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으며, 정확한 분석과 해석을 통하여 위대한 대작곡가들의 작품세계를 올바르게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입장권은 R8만원 S6만원 A4만원 B2만원

(문의 : 02-587-9277, 9272)

예매처 : 예술의 전당(www.sacticket.co.kr)

인터파크 티켓(www.ticket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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